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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 미국인턴의 어두운면과 사기꾼들과의 전쟁

Jay Tech 2017. 8. 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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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도 없는 이 거대한 땅에 헤딩을 한지 4주 째가 되어간다.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도 못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란 안일한 생각을 했던 때가 떠오른다. 아직 사회경험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상태에서 타지로 나오게 되니 더욱 그런거 같기도 하다.


물론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은 자본주의이다. 돈 있으면 살고 돈 없으면 죽어라. 각자 개인의 business가 매우 바쁘다. 타인을 신경쓰지 않는다. 의식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정'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정이라는 것은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영어로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다. 동창, 이웃, 식당의 이모 들까지... 미국에서는 식당 어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 말을 하면서도 식당 어머니라는 단어를 쓰는 것 까지 말이다.


사회는 냉혹하다. 내가 나이가 몇 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 저 인간이 돈이 될 것인가, 나한테 이득이 될 것인가? 어린마음에 제발 봐주세요, 아니 어떻게 사람이 그럴수가 있어? 이건 다 어렸을 때나 할 수 있는 변명이었다. 그나마, 그나마 학생들한테는 아직 관대한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학생들은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예를들어 한국에서 미 대사관 인터뷰는 재수가 없으면 말도 안되는 이유로 reject되기도 한다. 나도 인터뷰를 보는 도중 다른 직원이 끼어들어 얘는 뭔데? 라는 식으로 의심의 눈초리로 태클을 걸어왔다. 속으로 아.. 제발 가던길 가시지 왜 갑자기 끼어드는거지? 라고 생각했다.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서류를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Oh is he student? alright' 아 쟤 학생이야? 됐어 그럼 이러면서 가버렸다. 그자리에 내가 학생이 아니라 일반 직장인이거나 졸업생이었으면 reject될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넓은 땅에 한국인을 등쳐먹을 한국인들과 미국인들이 너무나도 많다. 어떻게 보면 나같은 케이스가 사기치려고 접근하기 딱 좋다. 가족, 친구 없이 맨몸으로 왔기 때문이다. 늑대 우리안에 양 혼자 들어간 격이다. 정말 내가 정신차리고 있지 않으면 홀라당 사기맞거나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는 환경이다. 


지금부터 간단하게 말을 할건데 말도 안되는 일들과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 일부만 얘기하려 한다. 그리고 이름은 아직 밝히지 않는다. 


미국에서 인턴으로 직장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가 조금은 복잡하다. Agency를 3개를 끼고 들어왔다. 소위 말하는 브로커들이다. 한국 agency, ds관련 agency(알선도한다, ds란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서류를 발행해주는 것이다), 나와 제일 가까이 있는 미국 agency

절차는 한국 agency에 의뢰를 하면 여기서 서류관련 sponser(ds발급기관)를 통해 비자발급을 도와주고 미국 agency랑 contact하여 직장목록을 받는 것이다. 미국내에는 많은 agency와 sponser가 있다. 한국에서는 이들과의 관계가 곧 돈줄이자 생명이다. 물건(학생)들을 원활히 공급을 하여 인지도를 올리고 더 많은 물건들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 그럼 얘네들의 수익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수수료다. 

비자 발급에 있어서 돈이 꽤 든다. 학생입장에 말하는 것이다. 등록금보다 훨씬 많이 든다. 이 돈에서 각종 수수료를 떼어간다. 미국 브로커가 한국 브로커에게 괜찮은 직장들을 많이 소개해줄테니 물건을 많이 보내라고 한다. 학생말고 물건이라고 하는게 문맥상 보기 좋을 것 같다. 사람을 가지고 이렇게 팔아먹는 얘기를 하니 인신매매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물건을 많이 보내고 받고 하면서 그 브로커들간에는 신뢰아닌 신뢰가 쌓이게 된다. 미국 브로커도 각종 회사에 물건을 넘기기 때문에 한국 브로커 쪽에서 수수료를 받아야 한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미국 브로커들이 물건을 얼마나 잘 관리를 하는지, 즉 warranty기간을 얼마나 잘 챙겨주는지에 따라 물건들이 시끄럽지가 않다. 시끄러운 물건들일 수록 브로커들 사이의 신뢰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물론 양심적인 브로커들도 있다. 여기서 양심적인 거는 그나마 양심적인 거다. 이런 얘기들은 절대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들을 수가 없다. 영업전략이고 이런거 얘기하면 당연히 물건들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 내가 경험한 것이고 와서 파악한 내용들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다른 브로커들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다. 대륙을 오가는 브로커들 사이에서는 개인연락은 금기시한다. 즉 다른 대륙에 있는 물건을 가져오려면 그 대륙에 해당하는 브로커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 것이다. Direct로 연락을 할 수 없는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몇번 direct로 왔다. 한국 브로커버리고 더 싼 수수료에 직접 계약하자고 말이다. 그것도 자기들 시간에. 난 자고 있는 새벽이었다. 안그래도 깨서 짜증나는데 같잖은 소리를 해서 대충 마무리하고 잔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한국 브로커에 얼마주는지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나한테 꼬치꼬치 캐물었다. 자기들 시간에 전화해서 궁금한거 다 묻는 패기에 얼탱이가 없었다. 당연히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얼마전에 문제가 생겨서 브로커들간에 신경전이 붙었다. 난 계약일에 일을 시작하지 못했고 며칠 간 페이를 받지 못했기에 나는 자동으로 시끄러운 물건이 되어버렸다. 각 3사는 (한국, 미국, 비자서류기관) 통화 할 때마다 반대쪽에서 무슨 말을 하면 자기들한테 꼭 얘기하라고 했고 서로서로 사기꾼이라고 믿지 말라고 했다. 헛 웃음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사기꾼들이 서로 사기꾼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미 미국 브로커는 내가 입국하자마자 몇 번 등쳐먹고 (자세하게는 못쓰겠지만) 한국 브로커쪽에서 받을 돈이 있어 나한테 빌빌 기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나이에 어린 나에게 존댓말까지 써가며... 

와중에 비자서류기관이 다른 직장 인터뷰를 봐보라고 했고 나는 downtown까지 먼 길을 떠났었다. 차도 없고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게 되었다. 편도로 70km가 넘는 길이었다. 택시기사는 흑인 여자였는데 몇 번 얘기하다가 내가 여기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라고 했더니 매우 놀라했다. 어떻게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올 생각을 했냐며 정말 대단하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여자 : 너가 가려는데가 진짜 여기 맞아? 

: 응, 맞다

여자 : 여기 가는거 누구 아는 사람 있어?

: 아니 아무도 모르는데?

여자 : 부모님은?

: 한국에 계신다.

여자 : 내말 잘들어, 여기는 너가 생각하는 동네가 아니야. 빨리 너 아는 사람한테 이쪽 간다고 말해

: 무슨소리야?

여자 : 위험한 동네야. 동양인은 찾기 힘들고 전부다 흑인들이야. 너 약속 몇시인데? 그 사람 알아?

: 아니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약속은 몇시 몇분이다. (저녁시간대였다)

여자 : 흠... 걔네는 총을 들고 다니고 절대로 저녁에 돌아다니면 안돼

(이 때 당시 나는 사기꾼들과 한명한명 전화하면서 조율하고 있던상태라 너무 스트레스 받은 상태였고 뭐 따질 힘도 없었다)

: ..... 몰라 괜찮다.

(오랜시간을 달려 도착했다)

여자 : 조심해라.

: 알겠어 잘가라.



다행히 해가 길어 어둡지는 않았다. 주변에는 온몸에 문신을 한 매우 큰 흑인들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뭘 먹길래 저렇게 큰것인가... 거친 자동차들의 굉음과 창문을 다들 열어놓고 볼륨을 최대로 높인 힙합을 틀고 다녔다. 그 옆에 나는 그저 작은 황색 인종일 뿐이었다. 여기서 운동하다 처음 만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길에서는 절대로 처음 온티를 내며 어색해하거나 땅을 보고 걷지 마라. 그들이 쉽게 알아채서 타겟이 된다. 다 털릴 것을 대비해 양말안에 캐시를 넣어 놓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 사이를 걸었다. 당연히 한 번씩 쳐다보았다. 그들 무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놈이니까. 그때는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했으므로 느낌이 무뎌져 있어서 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정말 다행이 아무일도 없었다.

그리고 다른 회사 사장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사기꾼들이랑 계속 있을 건지 나랑 내일 xxx로 (다른 주) 갈건지. 누가누구고 누가 사기꾼이고 누가 더 사기꾼이고 짱구를 빨리 굴려서 판단해야했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할거 알았지만 역시는 역시 역시였다. 이제 난 어차피 아무도 안 믿는다. 이런 risk를 감수할 수 없다. 오늘 밤 까지 생각한다고 하고 나왔다. 바로 택시를 잡아서 집까지 후딱 튀어왔다. 그날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날이었다. 절대 절대 나 말고 믿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 홀로 오려는 사람들에게 정말정말 정신 잘 차리고 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살아서 이렇게 손가락을 움직여 블로그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좋고 행복한 글들만 썼으면 좋겠다!


혹시 궁금한점 댓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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