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Jay22 2017. 1. 29.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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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스토텔레스(BC 384 322) >

 

1) 지식의 발전 단계

인간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의 근본 원리를 묻게 된 이유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원시 상태에 있는 무지한 인간은 모든 자연현상을 놀랍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워하고 당혹스러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왜 그런지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도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의 원인과 원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 역시 생기게 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바로 본격적인 앎의 시작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이 앎이 심화되고 그 단계가 높아지면 우리 인간이 처음에 가졌던 경이로운 감정과 호기심은 점점 소멸될 것이다.

 

이제 이 지식이 발전하는 모습을 그는 다음의 네 단계로 그리고 있다.

 

감각의 단계.

이 단계에서 인간은 감각 기관을 통한 지각이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앎을 갖고 있다. 이 단계에서 인간은 아직 동물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기억의 단계

일부 고등동물들은 기억의 능력을 갖고 이를 통해서 학습할 수 있다.

경험과 기술의 단계

지속적이고 반복된 감각적 지식을 갖고 이를 기억하게 되면 그에 관한 경험의 능력에 도달할 수 있다. 과거에 이미 지각했던 적이 있는 어떤 사물이나 사태를 접하면 인간은 과거의 기억에 힘입어 그것이 무엇인지를 즉각적으로 알고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이 하나하나 쌓이면 유사한 사물들과 사태들에 대한 하나의 보편적인 판단이 세워지는데 이를 기술이라 한다. 경험이 그저 개별적인 대상들에 대한 앎이라면 기술은 보편적인 지식에 해당한다. 기술을 가진 사람은 사물이 왜 그런지 그 원인을 아는 사람이다.

지혜의 단계

기술은 삶에 필요해서 발명되었거나 쾌감의 충족을 위하여 활용되지만, 그런 실천적인 목적 없이 그저 이론적이기만 학문이 이제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손만 사용하는 기술보다 통치하는 기술이 더 상위에 있고 더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하듯이, 다른 유용성에 얽매여 있지 않으며 그 결과 때문에 선택되지 않는, 앎 그 자체만을 위한 학문이 더 자유롭고 더 지혜로운 학문이라고 불릴 수 있다. 지혜를 통하여 파악된 가장 보편적인 것, 가장 제일 가는 원리와 원인은 그 밑의 다른 모든 구체적인 원인과 원리들에 선행하고 그것들을 포섭한다. 그러므로 그런 학문이 인간의 앎의 과정에서 최상위에 위치할 것은 쉽게 추측 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이 바로 이 지혜의 단계에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형이상학을 통하여 존재하는 것들의 가장 보편적이며 원리적인 지식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의 원리와 원인을 안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에 존재의 가장 근본이 되는 원인은 무엇인지를 우선 살펴보고자 한다.

 

2) 자연의 네 가지 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에는 다음의 네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한다.

질료인: 한 사물이 그로부터 생겨나는 것과 산출물 안에 구성요소로서 들어 있는 것. ) 청동은 청동상의 질료()이다.

형상인: 형상이나 유형, 즉 문제가 되는 사물이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 형태, 본질.

작용인: 운동이나 정지의 근접적인 근원인 것. ‘운동인이라고도 한다. ) 아버지는 아이의 작용인이다.

목적인: 목적이나 목표. ) 건강은 내가 운동을 하는 목적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한다.

 

이렇게 네 가지 원인을 설명하고 난 뒤 그는 혹시 다른 이들은 이 원인들 말고 다른 원인들을 찾아서 이를 통해 자연을 설명했는지를 알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그가 제시한 네 가지 원인들 이외의 다른 원인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 철학자들의 이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절차를 밟는다.

 

i) 자연철학자들에 대한 비판

먼저 탈레스를 위시한 최초의 자연철학자들의 경우를 살펴보았는데, 그들은 물질의 성질을 띠고 있는 원리들만을 모든 사물의 원리라고 생각했음을 그는 지적한다.

최초의 철학자들 대부분은 오직 질료적인 것만을 만물의 원리로 여겼다.”

 

따라서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원인들 중 오직 질료인만을 자연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사물의 본성, 혹은 본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런 방식의 설명은 어떻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될 수 있겠지만 ?’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도 줄 수 없다.

 

ii)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대한 비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의한 설명은 왜 어떤 것이 바로 그것인가에 대한 답으로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플라톤의 이론은 감각적인 사물,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나열한 기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정의나 본성과 같은 것을 언급함으로써 자연의 형상인에 관한 설명으로서는 충분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플라톤은 그 자체로 실재성을 갖는, 즉 정말로 존재하는 이데아가 감각적인 사물과 어떻게 관계하는가에 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플라톤은 물론 참여, 분유, 모사 등의 개념들로써 이 둘의 관계를 설명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그저 비유에 불과한 것이라고 치부한다.

"이데아는 원형이고 다른 사물은 이데아에 참여하고 있다는 말은, 알맹이가 없는 말이고 시적 비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라는 것이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사물들을 위해서, 그리고 생성과 소멸에 예속돼 있는 사물들을 위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왜냐하면 이데아는 이 사물들의 운동이나 변화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데아는 사물들을 인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이데아로부터 다른 사물들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기에 이 둘의 관계는 그저 모호할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 플라톤은 가시적 사물의 진정한 원인을 찾겠다고는 했지만 실상 그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을 그것의 원인이자 근거인 양 주장했을 뿐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결론내리고 있다.

 

이렇게 이전 철학자들의 주장들이 가진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난 뒤 그는 이제 존재에 관한 올바른 연구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에 맞춰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3) 1 철학으로서의 형이상학

 

i) 존재론의 가능성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 특히 그것이 존재인 한에서의 존재의 원리들과 원인들이 형이상학의 탐구의 대상이라고 했다. 이 때 존재()로서의 존재();on hei on란 어떤 의미인가?

 

그는 이를 다른 학문들과의 차이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형이상학은 존재의 원리와 원인을 찾는 학문이라고 했는데 사실 다른 모든 학문들도 제각각 원리와 원인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학문들은 특정한 조건과 전제를 가지고서 특정한 대상만을 다룬다. 자연학은 자연에 관한 탐구일 뿐이고 수학은 양적 존재만을 탐구한다. 반면 형이상학은 개별적인 분야들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영역에 제한되지 않는다. 존재 개념은 특정한 존재 양식을 지칭하는 범주들을 넘어서며 또 이들을 포괄한다. 이런 의미에서 형이상학은 존재 그 자체와 존재 전체를 탐구한다.

 

그런데 이렇게 존재를 존재로서 탐구하고 존재 전체를 탐구하는 학문이 도대체 가능할 수 있을까? 이 물음도 다른 학문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학문들은 무릇 존재에 관해 말하고 존재와 연관된 개념들을(있다, 없다, 같다, 다르다 등등) 사용하고 있으므로 존재라는 개념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어느 학문도 자신이 직접 대하는 주제 이상을 묻지 않고 또 물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모든 대상들의 배후에 있는 존재라는 가장 보편적인 개념을 직접 연구하는 학문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의 원리와 원인을 안다는 것인데, 모든 대상들의 원리가 되고 원인인 것을 모르고서는 진정한 지혜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모든 것들의 제일가는 원리, 첫 번째 원인으로서의 존재에 관한 학문인 형이상학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ii) 존재를 설명하는 원리로서의 질료와 형상

이제 이 존재가 무엇인지를 밝히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원리를 물었고, 이전 철학자들의 사상을 종합하여 질료형상이 바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라고 결론 내린다. 그 중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여전히 형상이 질료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기는 하지만, 형상 뿐 아니라 질료도 함께 있어야 어떤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기에 플라톤과 결정적으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편 형상이 질료에 대해서 왜 우선하는지, 그리고 존재와 관련해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성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앞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전 철학자들을 비판하며 그들이 존재와 그것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밝히지 못했다고 지적했음을 것을 보았다. 이제 그는 자신이 발견한 네 가지 원인들을 총동원해서 자연의 존재원리를 밝히면 이제껏 설명하지 못했던 현상들, 특히 플라톤이 밝히지 못했던 생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생성이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어떤 것에 의해서 어떤 것으로부터 어떤 것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생성되었는지를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질료로서, 이는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하나의 존재원리이다. 의자는 나무로부터 생겨나고 나무가 없었다면 의자는 의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생성의 원인을 묻는다면, 즉 어떤 것에 의해 그것이 생겨났는가를 묻는다면 이번에는 형상이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형상은 생성에 있어서 일종의 작용원인이 된다. 의자는 나무에게 의자의 형상이 부여됐을 때에야 의자가 될 수 있다. 비너스 여신의 형상이 없었다면 밀로 섬의 대리석 덩어리는 오늘날의 비너스 조각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질료와 형상의 개념을 결합하면 생성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했다.

 

형상은 또한 개별적 대상의 존재를 위한 원인이다. 어떤 개별적 대상이 바로 그것으로서 존재하려면 그 안에 형상이 일종의 질서와도 같은 역할을 해서 그 구성요소들이 통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따라서 형상은 개별적 대상에게 있어서 일종의 본질의 역할을 하면서 그것의 제 1원인이 된다.

 

iii) 가능태(dynamis)와 현실태(energia)

질료와 형상이 어떻게 실체, 즉 개별적 대상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은 존재의 가능태와 현실태 개념이다. 가능태와 현실태는 각각 존재의 어떤 상태들을 지칭한다. 가능태에 있는 어떤 존재는 그것의 본성과 본질, 그리고 능력을 아직 그대로 다 구현하지 못한 채 가능성으로만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사람은 비록 시각 능력은 갖고 있어도 지금은 그 능력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 일종의 가능태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떤 나무토막은 완성된 조각상에 대해서는 일종의 가능태의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설령 가능태의 상태에 있다고 해도 그 존재는 이미 그 능력이 주어져 있는 것이고 단지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았을 뿐이다. 즉 아지 활동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종종 형상과 동일시되는 현실태는 어떤 존재가 자신이 가진 가능성과 능력을 모두 발휘한, 자신의 본성을 모두 실현시킨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현실태는 가능태에 대해서 여러 모로 우선적이다. 어떤 씨앗을 심어야 그로부터 꽃이나 풀이 생겨나겠지만, 이 씨앗은 그것의 성장된 상태인 풀이나 꽃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것을 낳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하듯이 현실태도 가능태보다 먼저 있어야 한다. 보다 중요한 존재론적인 의미로도 현실태는 가능태보다 우선해야 한다. 형상으로서의 현실태는 질료로부터 개별적 대상이 생성되게 하는 원인이므로 우선적으로 이 원인이 주어져야 존재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자연의 모든 존재자들은 그들의 완성된 형태로 성장하고자 하는데 그것의 완성된, 완전한 원형인 형상, 즉 현실태는 가능태들에게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어떤 것의 목적은 그것보다 우선해야 하므로 이때에도 현실태의 가능태에 대한 우선성이 보장된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되기 위해서 성장하는데 이 때 개구리라는 완전한 형태는 이미 올챙이 안에 가능성으로 주어져서 올챙이를 성장시키는 원인이자 그것이 되어야 할 목적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자연의 모습은, 모든 가시적 사물의 구조적 원리로서 질료와 형상이 있는데 우선은 가능태로서만 있는 이 존재자들이 형상이라는 목적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운동하고 변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 설명 안에 자연 철학자들이 말한 질료적 원인도 포함되어 있고 플라톤의 형상도 존재와 생성의 원인이자 목적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존재의 원리와 원인 뿐 아니라 생성과 운동이 어떻게 자연 안에서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폭 넓은 이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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