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인간의 지식과 경험론

Jay Tech 2017. 1. 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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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론>

 

John Locke(16321704)와 경험론의 시작

 

(우리의 모든 지식은 외부 대상의 경험으로부터 유래하는가?)

 

인간지성론. 1690.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 지식의 원천 경험

로크는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경험에서 지식이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갖고 있다는 본유 관념의 존재를 부정했다. 만약 그런 것들이 있다면 어린아이나 백치들도 손쉽게 수학이나 논리학 등을 알 텐데 그렇지 않다는 점을 들어서 결국 우리의 지식 중 본유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 단순관념과 복합관념

그는 우리 의식이 갖는 모든 대상, 즉 감각, 지각, 기억, 상상 등을 모두 관념이라고 부른다. 이 관념들은 다시 단 하나의 내용만을 갖고 있는 단순관념과 이 단순관념들이 결합된 형태로 있는 복합관념으로 구분된다. 그는 이제 이 관념들에 대하여 그것들이 과연 우리 의식에서만 그런 내용을 갖고서 존재하는지, 아니면 경험·자연으로부터 그 기반을 갖고 있는지를 가늠하고자 한다. 먼저 단순 관념의 경우 그것은 우리 외부 대상들로부터 산출된 것이기에 실재적이라고 했다. 로크에 의하면 우리는 단순관념들을 스스로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단순관념들은 모두 실재적인 것에 합치한다. 반면 복합 관념들은 어떤 것은 실재적이고 어떤 것은 공상적이다. 복합된 관념들일지라도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들에 준거해서 만들어졌으면(연합됐으면) 그것은 실재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단순관념들을 결합시킬 때 상상을 덧붙여 우리 임의대로 복합관념을 산출했다면 그것은 거짓이고 공상적인 관념일 뿐이다.

 

이렇게 로크는 우리 인식의 참·거짓 여부를 그것과 외부 대상과의 합치에 준거하여 판단한다. 따라서 그는 경험론자이면서 또한 실재론자인 셈이다. 대신 우리가 의식 속에 갖고 있는 것들은 관념들이어서 이들은 실재하는 대상들과 구분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상식적인 실재론이 아니라 표상적 실재론을 쫓는 것이다.

 

 

- 1성질과 제 2성질의 구분

그의 이런 생각은 그가 물체의 제 1성질과 제 2성질을 구분한 것에서 잘 나타난다. 로크는 어떤 상태에서건 물체와 분리할 수 없고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성질들이 있다고 했고 이를 제 1성질이라고 부른다. 반면 어떤 성질들은 대상 그 자체에는 없지만 우리 안에는 특정하게 나타나는 그런 성질들이다. 1성질들로서 로크는 고정성, 연장성, 모양, 운동성, , 용적, 조직을 거론했고, 2성질들로는 색깔, 소리, , 냄새, 촉각 등을 꼽았다. 2성질 같은 경우 물체 자체는 그저 어떤 힘만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감관을 자극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성질처럼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지각을 일으키는 원인은 물체 자체에 있지만, 그 산출물, 결과물인 지각내용들은 물체에는 있지 않은 그런 것들이다. 우리의 관념들이 외부 대상으로부터 온 것은 맞지만 관념의 내용은 대상과 차이가 나므로 그의 이론은 관념과 실재의 차이를 인정하고 따라서 지각 표상설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데이비드 흄 (David Hume, 1711-1776)

인성론(1739)

(A Treatise of Human Nature)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1748)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 인상과 관념의 구분

흄은 인식에 있어서 먼저 인상과 관념을 구분한다. 인상(impression)이란 생생하고 직접적인 경험으로서 지금 내가 체험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다. 흄은 이 인상만이 이 순간 실재하는 확실한 것이고, 단 한 순간이라도 지나가면 바로 이전 순간에 지각됐던 인상들은 기억이라는 절차를 통해서만 소환될 수 있는 간접적인 관념이 된다고 했다. 관념들은 따라서 이미 없어진 것을 일으켜 불러내는 덜 생생한 것이고 그저 기억이나 상상을 통한 인상의 복사물에 불과하다. “모든 관념은 그에 앞선 인상에서 나온다.” 이제 우리는 이 (단순)관념들이 서로 근접해서 있거나 서로 유사하면 이들을 연합해서 복합 관념들을 만들기 마련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복합 관념들은 우리의 지식을 형성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복합 관념인 인과성의 관념에 흄은 특히 주목한다.

 

2. 인간의 기초신념들과 인과성의 관념

인과성의 관념은 흄에 의하면 여러 일반적인 관념들 중 하나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지식들이 기초와 토대로 삼는 기초신념들 중 하나이다. 흄은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지식들이 몇 개의 기본 전제, 가정을 토대 삼아 이를 기초로 해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부 세 개의 기초 신념들을 얘기했는데 바로 외부세계의 존재, 자아의 존재 그리고 인과성의 관념이었다. 단순하고 쉽게 말하자면, 일단 나 자신이 있어야 하고, 또 내 앞의 이 세계가 있어야 하고, 그리고 이 세계가 인과성의 원칙에 의해서 운동한다고 믿을 수 있어야만 이제 내가 이를 기초로 해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인식이나 지식을 쌓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흄은 이 세 가지 근본신념들이 정당한지를 검토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이 셋 모두 경험적 근거가 없고, 정당성이 없는 믿음들에 불과하다고 선언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엔 우리 인간은 우리의 모든 지식들을 정당성 없는 믿음들 위에 세워서 갖고 있다는 회의주의적 진단을 내리고 있다.

 

3. 인과추론의 본성

그러면 이제 우리는 흄이 왜 인과성에 대한 신념을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는지 그의 논증에 따라 밝혀 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가 인과의 관념을 떠올리게 되는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는 어떤 사태 A가 발생하면 항상 다른 사태 B 역시 뒤따른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계속해서 반복하면 어느 때 우리는 사태 A가 발생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사태 B가 이제 발생할 것이라고 예측하게 된다. 이때 예측하는 시점은, 사태 A는 발생했지만 사태 B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이다. 흄은 우리가 이렇게 예측하는 이유는, 우리가 두 사태 A B 사이에 원인과 결과라는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또 우리가 이렇게 원인과 결과로 이 두 사태를 연합하려는 이유는, 이 두 사태가 단지 비슷한 성질의 사태이고 시간적, 공간적으로도 근접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이 둘은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된다.’고 믿을 때에만 우리는 굳이 이 둘을 인과관계로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필연적 결합이 과연 경험에서 발견되느냐는 것이다. 흄은 우리가 경험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저 이 두 사태가 잇따라 발생한다는 것뿐이고 또 이것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뿐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필연적 결합이라는 계기는 경험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실 누구나 이 두 사태가 인과적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흄은 그 정당한 이유를 경험에서 발견하지 못했고 따라서 이를 이제 우리의 마음에서 찾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며 그것이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똑같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자연의 일양성(uniformity)을 굳게 믿는 우리는 이제 사태 A가 발생했을 때 과거의 무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또 다시 사태 B가 발생할 것이라고 추론하게 된다. , 인과성의 관념은 우리 마음의 일종의 추론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이미 경험한 기억으로부터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것을 기대하게 되며 이것이 바로 인과성 관념의 본성인 것이다. 이 추론의 근거는 하지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기대, 믿음, 신념일 뿐이다. 인과 추론의 밑바탕에서 움직이는 것은, 경험한 것에서 경험하지 않은 것으로, 발생한 사태에서 발생하지 않은 사태로 전이하는, 즉 옮겨가는 우리 마음의 활동일 뿐이다. 이런 신념은 그 자체가 경험적 관찰을 넘어선 어떤 것에 대한 신념이기 때문에 경험적인 정당성이 없다. 또한 논리적으로도 정당하지 못한데, 우리는 경험적인 사태 A의 결과로서 굳이 사태 B 뿐 아니라 다른 사태 C, D 등을 얼마든지 상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연적인 결과이지 필연적인 추론에 의한 도출은 아니므로 논리적으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 인과성이라는 관념은 아무런 논리적 필연성도 없고 경험적 정당성도 없는 한갓 믿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평소에 이 신념을 확실히 믿는다. 누구나 내일 태양이 떠오른다고 믿고, 누구나 높은 곳에서 물건을 놓으면 아래로 떨어져서 깨질 것이라고 믿고, 누구나 과속으로 달리다가 사고가 나면 크게 다칠 것이라고 믿기에 매일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 따라서 우리가 이렇게 믿는 원인은 우리의 자연적 경향에 있다고 흄은 보고 있다. 우리는 본성상, 본능적으로, 습관적으로 그렇게 믿고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제 과거의 반복으로부터 진행하는 모든 것을 습관이라 부름으로써 우리는 다음을 확실한 하나의 진리로 확립할 수 있다. 즉 현재의 인상에 뒤따르는 그 어떤 신념도 오로지 그러한 근원(, 습관)으로부터 온다. 우리가 두 개의 인상이 서로 연관되는 것을 보는데 익숙해질 때 관념은 즉시 우리를 다른 하나의 관념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대상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상호 연결도 발견할 수 없다. 또한 우리가 하나의 출현으로부터 다른 하나의 존재를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상상력에 작용하는 습관 이외의 그 어떤 다른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다.”

 

흄의 경험론적 이론은 단순히 습관에 의해서 인과성을 믿는 우리 인간을 합리적·이성적 존재로 그리지 않고, 오히려 본능, 습관과 같은 감성과 느낌에 의해 이끌리는 자연적 존재로 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지식에 숨겨져 있는 전제와 기초들이 이렇게 자연적 본성에 의해 생겨난, 엄밀하게 보자면 그 정당성이 결여된 한갓 습관이나 믿음에 불과하다고 폭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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