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인간과 도덕 - 1

Jay22 2017. 1. 2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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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도덕

 

1. 도덕이란 무엇인가

 

- 관습과 도덕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부모를 공경하라”, “선한 일을 행하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등과 같은 말을 대한다. 우리는 이런 교훈들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들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우리 모두가 수긍할 만한, 그리고 마땅히, 혹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리는 규범’, ‘관습혹은 도덕이라고 부른다. 그 어원인 그리스 단어 ‘ethos’와 라틴어 ‘mores’ 등은 본래 습관, 혹은 관행이라는 뜻을 가졌는데, 도덕이라 불리는 것도 본래는 사소하고 우연적인 것 같은 습관에서 비롯되었다는 발상을 내포하고 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 습관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몸에 익어 익숙해진 후, 결국 그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그의 성격과 성품이 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우리는 이를 (virtue, Tugend)’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면 일종의 관습으로 볼 수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지켜 내려와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널리 인정하는 질서’·‘규범’·‘풍습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도덕은 이렇게 두 가지 차원, 즉 개인적인 차원과 사회적인 차원 모두에서 올바르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며 마땅히 지켜지고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되는 규범·원칙·도리 등을 통칭하는 말이다. 도덕이 개인과 사회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실현되는 원칙을 주로 가리킨다면, 윤리학은 이런 사실적인 도덕에 관한 이론적·반성적인 성찰과 연구를 하는 철학의 한 분과이다. 도덕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 차원을 통치하는 것이라면 윤리학은 그것의 내면에 담겨 있는 본성과 근거에 관한 이론적 학문이다.

 

2. 윤리학의 근본문제

도덕을 규명하기 위해 윤리학이 고민하는 근본적인 문제 중 다음의 두 가지를 논하고자 한다.

 

1) 존재(자연)와 가치. 사실과 당위

윤리학은 이른바 당위에 관한 학문인데, 그것의 원칙은 자연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실관계를 아무리 명확히 밝혀도, 그리고 자연의 원리를 아무리 잘 파악해도 그로부터 가치나 의무와 같은 도덕과 연결된 개념을 찾을 수 없다. 자연은 단어 뜻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것일 뿐 우리 인간의 행위에 대한 지침이나 방향을 직접적으로 제시해 주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도덕적인 가치와 어긋나는 것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유전자)에는 자신의 생존과 종족보존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각인돼 있다. 따라서 이타적 행위와 같은 것은 우리의 자연적 본성을 거스르는 것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상에서는 자주 발생하고 우리는 이를 도덕적이라고 칭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왜 이런 행위가 발생하고 또 우리는 왜 이것을 도덕적인 행위라고 부르고, 또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또한 윤리학의 과제이다.

 

물론 우리가 항상 도덕적인 원칙에 따라서만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이기적인 행위들, 탈세, 편법, 불법 행위 등은 명백히 도덕적이지 않은데 많은 이들이 그런 부정행위를 저지르곤 한다. 그리고 그들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오히려 더 성공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자연과 당위, 욕구와 도덕사이의 관계와 갈등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또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해야 하는지를 윤리학은 밝히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실마리로서 우리는 당위라는 개념의 본성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물리적인 신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자연의 일부인데 만일 우리의 행위 전부가 이 자연법칙에 의해서 지배 받는다면 당위라는 개념 자체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도덕적 당위라고 여기는 행위들이 자연적 본성에 의해서 저절로 이루어졌다면, 즉 우리의 의지에 의해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면, 당위나 도덕, 그리고 윤리학과 같은 것들은 모두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어떤 행위들은 다른 종류의 원인에 의해서 가능하다거나 또는 자연법칙과는 다른 종류의 법칙에 따라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어야만 당위적 행위나 도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윤리학의 최우선 과제인 셈이다.

 

2) 자연과 자유

 

윤리학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문제로서 우리는 자연과 자유를 들 수 있다. 인간은 살면서 실로 많은 행위를 하는데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물론 외면적으로는 우리의 근육, 신경 등이 작용하여 우리의 몸을 움직여서 가시적인 행위가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내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동기라는 측면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때 우리가 과연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서 자유롭게 결정해서 어떤 행위를 하는지, 아니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내게 영향을 준 주변 환경과 조건들에 의해서 이런 행위를 하는지(그러면서도 내가 자유롭게 결정하고 행했다고 착각하는지)는 윤리학이 던지는 가장 우선적인 질문이다.

 

만약 여기서 모든 것은 인과율에 의해서 자연적 원인과 근거 때문에 발생한다고 대답한다면 인간의 자유는 없는 것일 테고, 도덕이나 윤리도 없어질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가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사회적·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도 없어진다. 누구나 자신의 행위에 전혀 책임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의지가 없으면 책임도 없으므로 인간이 자유롭게, 즉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써 무언가를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야만 윤리와 도덕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지배를 받는 신체를 가진 존재이고 자연 전체는 자연법칙에 의해서 진행된다는 것을 상기할 때 자유라는 것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러므로 어떻게 자유가 인과성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지를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윤리학의 앞에 놓여 있다.

 

-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양립 가능성

 

자연과 자유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우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다. 우선 인과성의 원칙과 충분근거율을 바탕으로 해서 자연의 모든 것의 진행이 법칙적으로 이미 결정되었다는 주장을 우리는 결정론(Determinism)이라 하는데, 이 결정론적 입장에 대해서 자유가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과 결정론을 어느 정도 수용해도 자유는 모순 없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있다.

 

엄격한 결정론의 입장을 따르자면 인간과 세계는 모두 자유롭지 않고 엄격한 인과성의 계열과 체계에 의해서 서로서로 필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복잡한 자연현상의 원인을 우리는 비록 지금 현재 다 찾지 못했을 뿐, 그것의 원인은 항상 있기 때문에 우리가 자유롭게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은 이런 자연법칙에 의해서 생리학적으로나 신경학적으로 이미 결정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소위 양립론자들은 자연은 비록 결정론적으로 진행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이 둘, 즉 인과성의 세계와 자유의 세계는 그 존재론적·경험적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생각에 있다. 그래서 하나의 세계는 인과적 필연성이 지배하고, 또 다른 하나의 세계는 자유가 가능한 세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대로 우리는 적어도 이 둘의 양립 가능성을 확보해야만 도덕과 윤리학을 논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윤리학적 이론은 적어도 이 둘의 양립 가능성을 어떤 방식으로건 인정함을 전제한다고 볼 수 있다.

 

칸트의 양립론: 초월적 이상으로서의 선과 도덕적 행위의 원인으로서의 자유

 

기계적 인과성에 의한 결정론과 그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의 의지가 양립가능하다고 생각한 대표적인 철학자로 우리는 칸트를 떠올린다. 그는 특유의 환원적 방법을 쫓아 우선 도덕적 행위와 자유를 (우리가 이를 확실히 경험한다고 함을 근거로 해서)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래서 마치 공간·시간, 범주가 우리 인간의 선험적 형식이어서 우리의 인식을 가능하게 해 준 것처럼, 자유로운 의지도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고 이로 인해 도덕적 행위가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하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 자유의지는 처음부터, 즉 선험적으로 인간에게 구비되어 있는 것이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도덕적 행위가 발생하게 된다.

 

이 때 자유(의지)가 도덕적 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어떤 자연적 원인에 의해서 또 다른 어떤 자연적 결과가 발생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어떤 음료를 마시는 것의 원인이 단순한 수분고갈과 그에 수반한 갈증이라면 이 둘의 관계는 전형적인 자연 내의 인과적 관계일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마시는 행위도 자연 안에 있고, 그것의 원인도 하나의 생리현상으로서 자연 안에 있다. 그런 한에서 이 둘은 철저히 인과적 사슬에 묶여 발생한 일련의 상황일 뿐인데 이는 결정론적 관점에 의하면 이미 정해져 있고 예측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 행위를 야기하는 나의 자유의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일종의 목적인으로서 무언가를 추구하고 지향하는 종류의 원인인 셈이다. 내가 무언가를 행위하는 데에는 항상 목적과 가치가 있다.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행하는 것은 단순한 행동일 뿐이지 인간의 의도적인 행위라 불릴 수 없다. 그런데 이제 도덕적 행위의 목적과 그것이 추구하는 바는 당연히 선, 즉 도덕적 가치일 텐데, 이러한 순수한 가치, 그 자체로 값있는 어떤 것은 공간과 시간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경험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자연과 현상 밖에 놓여 있는, 초월적인어떤 것이다. 그래서 그 목적이 현상계를 초월해 있는 어떤 것은 원인과 결과 모두 현상계 내에 머물러 있는 경험적 사태와 그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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